현대 수사학의 거장 케네스 버크(Kenneth Burke)는 설득(Persuasion)의 정의를 완전히 새롭게 썼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수사학이 '설득'에 집중했다면, 현대의 수사학은 '동일시(Identification)'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버크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분리된 존재(Divided Beings)입니다. 이 근원적인 분리감을 극복하고 누군가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구'야말로 정치적 설득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당신이 상대의 언어로 말하고, 몸짓하고, 어조를 맞추고, 질서를 공유하고, 이미지와 태도, 관념을 함께할 수 있을 때에만 그를 설득할 수 있다."
1. Consubstantiality (본질적 공유)
버크는 동일시의 상태를 '본질적 공유(Consubstantiality)'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두 사람이 여전히 독립적인 개체이면서도, 상징적으로는 공통의 본질(이익, 태도, 가치관 등)을 공유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 상징적 행위: 정치인이 노동자의 옷을 입거나, 지역 사투리를 쓰거나, "우리는 한 배를 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닙니다. 이는 청중과 '본질'을 공유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상징적 투쟁입니다.
- 설득의 메커니즘: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도 당신과 같다(I am like you)"는 감각을 심어주어 자발적인 동의를 이끌어냅니다.
2. Identification & Division (동일시와 배제)
버크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은 "동일시는 필연적으로 배제(Division)를 낳는다"는 점입니다. '우리(We)'를 강력하게 결속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들(They)'을 설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공통의 적(The Scapegoat):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가장 빠르고 위험한 방법은 공통의 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버크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 분석을 통해, 어떻게 유대인이라는 '악마화된 타자'를 통해 독일 국민을 하나로 묶었는지(Identified) 경고했습니다.
- 정치적 양극화: 현대 정치에서 진영 논리가 강화되는 것은 리더들이 '포괄적 동일시' 대신 '배타적 동일시'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기 때문입니다.
3. Connection to Methodology (CPS-15 적용)
본 연구의 분석 도구인 CPS-15 (Civic Persuasion Score)에서 버크의 이론은 리더의 민주적 자질을 평가하는 핵심 척도입니다.
- Burkean Identification (Indicator 11): 리더가 청중과 얼마나 효과적으로 심리적 유대감을 형성하는가?
- Inclusive vs. Exclusive: 그 동일시가 "확장된 우리(인류, 시민 전체)"를 지향하는가, 아니면 "특정 집단만의 결속"을 위해 타자를 배제하는가?
- Analysis: 민주적 리더(예: 링컨, 만델라)는 차이를 넘어선 통합적 동일시를 추구하는 반면, 선동가들은 분열을 통한 결속을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