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단순한 말잔치가 아니다: 언어로 집행되는 권력의 실체
흔히 사람들은 정치인들의 담화나 공약을 보며 "정치인은 입만 살았다" 혹은 "말뿐인 잔치"라며 냉소하곤 합니다. 하지만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생각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렸습니다. 정치는 결코 언어 '이후'의 행동이 아닙니다.
언어는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고 '집행'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언어철학자 J. L. 오스틴(J. L. Austin)은 우리가 말을 하는 것이 곧 어떤 행동을 하는 것(Doing things with words)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치는 언어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로 실현됩니다.
존 설(John Searle)은 한 발 더 나아가, 돈, 국경, 헌법과 같은 사회적 제도가 '제도적 사실(Institutional Facts)'임을 강조합니다. 산이나 강 같은 '가공되지 않은 사실'과 달리, 정치는 우리의 언어적 합의를 통해 유지됩니다. 정치 체제란 우리가 이러한 언어적 선언을 계속해서 재생산하고 수용할 때만 유지되는 '영구적인 수행적 성취'입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는 물리적 힘이 행사되기 이전에 이미 제도적 구조를 바꾸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언어적 사건’입니다.
"X는 C라는 맥락에서 Y로 간주된다"는 논리입니다. 특정 인물이 선거라는 맥락에서 대통령으로 간주될 때, 그는 단순한 개인이 아닌 권력의 상징이 됩니다.
언어행위가 창조하는 '권리, 의무, 권한'의 망을 의미합니다. 지도자의 선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복종할 의무'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모든 정치 체제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민주주의가 '대답'을 기다린다면, 독재는 '복종'을 확인하려 합니다.
지도자의 발화가 거부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험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만드는 핵심입니다.
21세기형 신종 독재나 하이브리드 정권은 명령하지 않으면서도 굴복시키는 '전략적 모호함'이라는 고도의 정치적 기술을 사용합니다.
"누군가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와 같은 모호한 위협은 책임을 회피(Plausible Deniability)할 구멍을 만드는 동시에, 시민들이 '어디까지가 허용되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스스로를 검열하게 하는 공포를 확산시킵니다.
정치는 국회나 청와대라는 건물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도자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답'하는가라는 언어적 실천 속에 존재합니다.
"오늘 당신이 들은 정치인의 말은 당신에게 대화를 제안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복종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질문하기를 멈추고 주어진 명령을 반복하거나, 모호한 위협 앞에 침묵하기 시작한다면 우리 사회의 언어적 공간은 폐쇄될 것입니다.